『트립(The Trip)』은 노르웨이 출신 감독 토미 위르콜라(Tommy Wirkola)가 연출하고, 노오미 라파스와 액셀 헤니가 주연을 맡은 잔혹 코믹 스릴러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부부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떠난 ‘로맨틱(?)한’ 여행이 뜻밖의 방향으로 전개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블랙 코미디, 서스펜스, 홈 인베이전 액션, 그리고 잔혹 유혈극이 한데 뒤섞인 이색적인 작품입니다. 넷플릭스에서 2021년 공개된 이 영화는 ‘잔혹한데 웃긴’이라는 진귀한 평을 받으며 유럽권에서 먼저 입소문을 탔고, 국내에서도 컬트적인 팬층을 만들었습니다.
줄거리: 서로를 죽이러 떠난 주말여행
로스(Lars)는 시청에서 일하는 피곤한 중년의 드라마 감독이고, 리사(Lisa)는 커리어가 침체된 배우입니다. 두 사람은 한때 뜨겁게 사랑했지만, 이제는 서로의 숨소리도 싫어하는 ‘극단적 권태기’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로스는 낚시를 핑계로 시골 외딴 오두막으로 리사를 데려가고, 그곳에서 리사를 살해할 계획을 세웁니다. 보험금을 노리고 완전범죄를 꿈꾸죠.
하지만 반전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리사 역시 로스가 자신을 죽이려 할 것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고, 그녀 또한 칼과 전기톱을 준비해 온 것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오히려 그 과정에서 오랜 시간 누적된 불만과 증오를 낱낱이 폭로하는 극한의 감정싸움을 벌입니다.
그러나 이 엽기적인 커플의 살벌한 여행은 더욱 기묘한 국면으로 치닫습니다. 외딴집에 세 명의 수상한 남자가 침입하면서, 두 사람은 생존을 위해 뜻밖의 협력을 하게 됩니다. 알고 보니 그들은 탈옥한 범죄자들로, 이 집을 은신처 삼으려 했던 것이었죠. 리사와 로스는 다시 서로를 죽이기보다는, 이들과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이기 시작합니다. 잔혹한 살육과 생존극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이 커플은 다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게 됩니다.
등장인물 및 연기: 진심으로 싸운 커플의 리얼 케미
노오미 라파스(리사 역)는 영화의 가장 강렬한 중심입니다. 그녀는 단순한 피해자 혹은 고전적인 여성 캐릭터가 아닌, 잔혹성 면에서 로스와 막상막하인 ‘살벌한 부인’을 완벽하게 연기합니다. 눈빛과 대사 한 줄 한 줄에 날이 서 있고,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까지 소화하며 리사라는 캐릭터를 진짜 사람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액셀 헤니(로스 역)는 겉보기엔 유약하고 지질해 보이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광기와 계산된 이기심을 놀라울 만큼 사실적으로 표현합니다. 그의 연기는 “정말 이런 남편 있을 법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현실적입니다. 두 배우는 극 중에서 진짜 부부처럼 말싸움하고, 치고받고, 욕을 하고, 협력하면서 진짜 감정이 살아 있는 듯한 리얼 케미를 만들어냅니다.
조연들도 인상적입니다. 이 집에 들이닥친 탈옥범 삼총사는 그 자체로 스릴과 유머의 요소가 됩니다. 그들은 폭력적이지만 허술하고, 잔혹하면서도 어딘가 코믹합니다. 그들 역시 피해자일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이 영화는 단순한 선악 구조를 탈피하고, 각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해석과 평점: 부부관계, 폭력, 인간 본능의 풍자
『트립』은 명백한 블랙 코미디 스릴러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서로 죽이려던 부부가 협력해서 악당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그 와중에 부부라는 제도와 인간의 공격성, 그리고 현대인의 내면 깊숙한 어두운 욕망을 들춰냅니다.
처음부터 이 부부는 서로를 증오합니다. 정신적·육체적 폭력도 서슴지 않고, 심지어 “이젠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말까지 거침없이 내뱉습니다. 하지만 외부의 진짜 위협이 닥쳐왔을 때, 그들은 본능적으로 '우리 편'을 인식합니다. 그리고 함께 싸우며,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존재감과 생명력을 서로에게 느끼기 시작합니다.
감독 토미 위르콜라는 이미 『데드 스노(Dead Snow)』 같은 B급 좀비영화에서 잔혹한 유머와 스타일을 보여준 바 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것을 더 정교하고 감정적으로 포장했습니다.
비평가 평점은 Rotten Tomatoes 85%로 꽤 높으며, IMDb에서는 6.9점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편입니다. 잔혹한 장면에 민감한 관객에겐 부담스럽겠지만, 잔인한 유머, 속도감 있는 전개, 신선한 부부 갈등 묘사가 매력 포인트입니다.